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느끼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리플러스 인간 연구소의 박재연 소장은 자존감을 태양에 비유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구름에 가려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구름을 걷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존감은 태양이다 — 수동적 지지로 다시 일어서는 법
박재연 소장은 자존감을 태양에 비유합니다. 태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지만, 개인적 상실의 사건이나 사회문화적 유산이라는 구름에 가려질 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세상을 떠나거나, 헌신을 다했던 일자리에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 혹은 비교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와 체면 문화가 그 구름의 정체입니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 즉 구름이 많은 상태에서는 대화에도 뚜렷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상대방의 말이 내 머릿속에 들어올 틈이 없고, 저 사람을 공격하거나 나 자신을 공격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또한 자기희생의 신념이나 굴복의 신념이 활성화되어, 누군가 "원하는 게 뭔가요?"라고 물으면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늘 누군가에게 맞춰주고 인정과 승인을 받아야 했던 사람일수록 이런 질문 앞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구름을 걷어내는 첫 번째 방법은 무엇일까요? 박재연 소장은 수동적 지지를 강조합니다. 다이애나 포샤라는 학자가 말했듯, 회복력이란 마음이 무너졌을 때 혼자 일어서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을 때 일어나는 힘입니다. 부모님이 그 지지적 대상이 되어주면 가장 좋지만, 현실에서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핵심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주체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지적 관계, 즉 서포터가 한 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비교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거나 낮추려는 노력 자체가 문제입니다. 자존감은 경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보다 낫고 못함을 따지는 순간, 이미 그 비교의 구름 속에 들어가 버립니다. 주변 가족이나 친구라는 진정한 서포터와 함께 도움을 받으면서 일어서는 경험, 그것이 자존감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나 혼자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는 고군분투보다, 단 한 명의 따뜻한 지지적 관계가 훨씬 강력한 회복의 힘을 발휘합니다.
쓸모 있는 나를 발견하는 봉사의 힘
박재연 소장이 제안하는 두 번째 방법은 봉사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심리 구조에 근거한 실질적 처방입니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는 협력의 욕구입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인간은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자존감이 가려진 상태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나는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뒤집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봉사입니다.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서 행위적 봉사를 하는 것, 그것이 "나는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경험으로 직결됩니다. 이것이 어떤 거창한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 보이는 분을 한 번 더 도와드리고, 문을 열고 갈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아주 작은 행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50대 남성이 "강점이 뭐냐"는 질문에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들에게 편의점에서 고양이 캔을 사다 주는 내 모습이 좋다"고 답한 사례는 이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누가 알아주든 모르든 상관없이, 생명을 돌보는 행위 속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의 태양을 직접 바라보는 경험입니다.
사용자의 비평은 이 지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SNS에서 좋아요를 받거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이겨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경험, 나의 행위가 타인의 삶에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다는 실감이 자존감을 회복시킵니다.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종종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자신을 잃어갑니다. 봉사는 그 반대 방향, 즉 나의 진정한 욕구와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봉사는 뇌의 상태를 바꿉니다. 분노, 불안, 우울이라는 강한 정서가 편도체를 활성화시켜 파이트(싸움), 플라이트(도피), 프리즈(동결) 반응을 유발할 때, 우리의 공감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작은 친절과 봉사의 행위는 이 편도체 반응을 완화하고, 인간의 협력 본성을 되살립니다. 먹구름이 가장 짙을 때,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오히려 그 구름을 가장 빠르게 걷어내는 방법입니다.
SNS 문화와 자존감 — 분별력을 키우는 대화법
현대인의 자존감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환경적 변수 중 하나는 SNS 문화입니다. 박재연 소장은 SNS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인들의 근황을 서로 알고 연결되는 것은 분명한 순기능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올려야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까"라는 의식이 개입될 때, SNS는 자존감을 갉아먹는 도구로 변합니다.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합니다. 텀블러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타인이 쓰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구매하고 올리는 행위, 그로 인해 받는 좋아요와 인정의 기쁨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난 뒤 찾아오는 허탈함은 그 충족이 진정한 내면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20대 청년이 모임 리더의 명품 가방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 역시, SNS가 조장하는 끊임없는 비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SNS를 차단하면 해결될까요? 박재연 소장은 그보다 분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행복을 준다면 SNS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너무 힘든 상태에서 SNS의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다가온다면, 당분간 끊어도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지금 심리적으로 안 좋은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유도 모르면서 과도하게 괴롭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캡슐처럼 보관되어 있는 그분만의 그림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빨래 냄새 하나에 배우자에게 과도하게 화를 냈던 남성이 실은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듯이 말입니다.
사용자의 비평은 여기서 핵심을 짚습니다. 자존감은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관리할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SNS 문화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 타인의 시선을 위한 행동인지 진정한 나의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인지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그 판단이 어렵다면 믿을 만한 전문가적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대화는 자기가 누군지 모르면 상대를 알 수가 없습니다. SNS 속 자신이 진짜 자신인지 돌아보는 것이 건강한 자기 인식의 시작입니다.
자존감은 비교와 경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태양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서 회복됩니다. 수동적 지지를 통해 누군가와 함께 일어서고, 봉사를 통해 나의 쓸모 있음을 경험하며, SNS 문화 속에서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비교가 아닌 연결, 승인이 아닌 진정한 대화가 자존감 회복의 핵심입니다.
[출처]
지식인 초대석 (한석준) — 박재연 소장 편: https://www.youtube.com/watch?v=mwc3B9G7Q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