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연구와 메타분석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개인의 판단력과 이타적 행동을 무너뜨리고 사회 전체의 건강 지표까지 악화시킵니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나에게 맞는 수면 유형을 알아야 숙면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몇 시간 자는 것이 정답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수면에는 개인마다 고유한 유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크게는 롱 슬리퍼와 숏 슬리퍼, 그리고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롱 슬리퍼는 오래 자야 하는 사람입니다. 심리학 문헌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롱 슬리퍼로, 하루 11시간을 잤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약 6시간을 자는 숏 슬리퍼에 해당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롱 슬리퍼는 창조적이고 연결적인 사고에 강한 경향이 있고, 숏 슬리퍼는 비즈니스와 실무 감각이 뛰어난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두 유형이 공존함으로써 사회가 24시간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침형 인간은 오전 9시경 IQ 검사를 하면 높은 점수를 기록하지만, 오후 5시 이후에는 같은 검사에서 점수가 낮아집니다. 반대로 저녁형 인간은 이 패턴이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이는 심리학자들조차 최근까지 간과해 온 사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연구 결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수면 유형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일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실제로 수면 추적 디바이스를 사용하며, 6개월간 하루의 말과 행동에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날 몇 시에 자서 몇 시간 잤는지를 함께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수면 패턴과 컨디션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MBTI처럼 서로의 수면 유형을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수면 유형인지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숙면의 출발점입니다.
숙면 습관을 만드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실천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성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김경일 교수는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에게 성의를 보이듯, 잠을 맞이하는 태도에도 성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상태, 즉 기절하듯 쓰러지는 것은 좋은 잠이 아닙니다. 너무 피곤한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 경험을 해보신 분이라면, 성의 없이 잠을 대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수면 연구자 주은현 교수는 "잠에 갑자기 들어가는 것처럼 몰상식한 행동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류는 35만 년 동안 해가 서서히 지는 자연의 리듬에 맞춰 잠을 맞이해 왔습니다. 그런데 밝은 조명 아래 있다가 갑자기 불을 끄고 자려 하면, 뇌는 마치 기절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혼란스러워합니다. 따라서 자기 1~2시간 전부터 조명을 하나씩 끄고, 자극적인 액션 영화 대신 뇌가 이완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경일 교수는 컴퓨터 모니터 세 개 중 두 개를 끄고 작업하는 방식으로 수면 준비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스마트폰 역시 수면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입니다. 수면 연구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보급과 코로나19를 불면증의 두 가지 날짜 변경선으로 꼽습니다. 스마트폰은 하이퍼링크를 통해 메모에서 문자 메시지로, 문자에서 주가 확인으로 뇌를 끊임없이 노동시킵니다. 취침 시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닿지 않는 거실이나 가방 속에 두어야 합니다. 독서를 위한 전용 태블릿은 블루라이트가 있더라도 뇌의 과도한 활성화 없이 졸음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상 후 루틴도 그날 밤의 수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어나서 햇빛을 경험하는 것이 그날 밤 잠에 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자기 전 한 시간, 기상 후 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것, 그것이 숙면 습관의 핵심입니다.
성장감과 좋은 관계가 만드는 진짜 숙면의 조건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수면을 방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수면 부족이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우리는 대부분 전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들의 메타분석 결과는 의외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잠을 먼저 잘 자는 것이 우선순위여야 합니다.
숙면을 돕는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요인은 소중한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전 가족에게 "고마워", "오늘 수고했어", "잘못한 거 미안해"라는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숙면을 상당 부분 돕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문화가 확산되었는데, 이처럼 인간이 도구적인 목적으로만 말을 하게 되면 스스로를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냥 궁금해서", "잘 지내?"라는 용건 없는 안부가 수면과 정서적 건강을 함께 지켜줍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요소는 성장감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잠을 달게 잔 두 가지 경험으로 군 훈련 시기와 공부해서 성적이 잘 나왔을 때를 꼽습니다. 배우고 성장한다는 감각, 내일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잠을 잘 이끈다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는 인간은 결코 잠을 잘 자기 어렵다는 표현은 다소 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삶에서 의미와 방향을 느끼는 사람이 더 깊이 잠든다는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수면 보조제나 보조식품이 만성적인 수면 장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일반적인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좋은 관계, 감사와 사과의 언어, 그리고 성장감이 어우러질 때 진정한 숙면이 가능합니다.
영국에서는 청소년 등교 시간을 한 시간 늦춰 수면 시간을 확보했더니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청소년 범죄율 감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잠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이제는 잠에 성의를 가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수면 유형을 파악하고, 취침 루틴을 만들고, 소중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것. 이 작은 실천들이 쌓여 삶의 질을 바꿉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오늘부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 잠바시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ZJa0LLBKb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