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서 '손절'이라는 단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시대입니다. 상담심리 전문가 이호선 교수는 이 현상의 이면에 '근자감'과 '불안'이라는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손절은 용기일까요, 아니면 두려움의 다른 이름일까요?
손절을 부르는 근자감,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의 실체
상담심리 전문학 이호선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손절 문화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근자감', 즉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언급합니다. 아이 하나 둘로 성장한 세대는 방에 혼자 있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경험이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마치 레고 블록처럼 끼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람을 하나의 정점이 아니라 일련의 부속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호선 교수는 이 자신감이 근거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사용하는 화장품, 머무는 공간 하나하나가 모두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전기는 그냥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단순한 상식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감사와 연결의 감각을 잃어버린 시대의 단면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은 과연 진짜 자립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누군가가 깔아 놓은 탄탄한 토대 위에 서 있으면서, 그 토대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착각일까요? 유아독존(唯我獨尊)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지탱하는 그 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관계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손절의 이면에 숨겨진 불안,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심리
이호선 교수가 짚어낸 손절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불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당당해 보이는 손절의 이면에는, 내가 그에게 끊기기 전에 내가 먼저 끊겠다는 선제적 방어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밀어낸다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끊긴다는 것은 고립, 곧 왕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절은 빠릅니다. 내가 먼저 끊어냄으로써 왕따를 당하는 쪽이 아니라 주도권을 가진 쪽에 서려는 심리입니다.
또한 이 불안은 가족 관계에까지 이어집니다. 이호선 교수는 가족도 쉽게 끊어내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혼의 일상화로 파트너가 바뀌는 것을 보며 자랐고, 부모의 재혼을 통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바뀔 수 있다는 경험을 한 세대에게, 가족은 더 이상 절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나에게 피해를 준다면 가족이라도 단번에 끊어버리고, 두 번의 기회도 주지 않는 냉정함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손절'과 과거의 '절교'를 구분하는 이호선 교수의 통찰은 매우 예리합니다. 절교는 교제를 끊는 것이지만, 손절은 경제 개념입니다. 손해를 끊는다는 뜻으로, 관계의 시작점부터 상대방이 내게 플러스인 존재였고, 이제 제로이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환산하는 냉정한 계산법이 관계의 언어 속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불안의 심리는 충분히 공감됩니다. 먼저 버림받는 아픔을 피하기 위해 먼저 버리는 선택을 한다는 것, 그 고통의 깊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픔을 경험해 본 사람이 오히려 같은 아픔을 가진 이에게 더 큰 위로와 공감의 손길을 건낼 수 있습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거리를 두고 상처를 주기보다, 그 에너지를 도움의 손길로 전환할 수 있다면 관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관계를 이어가는 소통의 원칙, 처음 밥 한 끼가 만드는 인연
이호선 교수는 관계에 서툰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지켜야 할 소통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첫째, 절대 욕하지 않는 것입니다. 농담이라도 상대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정 유머, 예를 들어 "너는 다 좋은데 머리가 나빠"와 같은 말은 주변을 웃게 만들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모욕감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호선 교수는 이를 아첨이라 불러도 좋다고 말합니다. 상대가 달콤하다 느끼는 말, 의미 있다고 느끼는 말이 그 사람을 내 곁에 머물게 하는 힘이 됩니다.
셋째, 자신만의 능력 하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실함이든, 유머든, 경청의 능력이든, 상대가 나를 인정할 만한 한 가지 장점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는 친구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사람에게 배울 게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처음 밥을 함께 먹을 때의 소통에 대해서 이호선 교수는 리스테이팅(재진술) 기술을 권합니다. 상대방의 끝 단어를 따라가며 "그러셨구나", "그럼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가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이 아는 것을 신나게 말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 이것이 관계를 부드럽게 시작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세상은 정말 좁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연입니다. 이호선 교수는 손절에 쓰려 했던 에너지를 관계 형성에 쓴다면 다음 생애까지도 함께할 친구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관계를 끊어버리기를 선택하기보다 관계를 이어가기를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이 결국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토대가 됩니다. 손절을 실행하는 데 드는 그 모든 노력, 안 봐야 하고 연결해 주려는 사람에게도 싫다고 해야 하는 그 에너지를 오히려 관계에 쓴다면 어떨까요.
손절이 일상의 언어가 된 시대, 그 이면에는 근자감과 불안이라는 복잡한 심리가 얽혀 있습니다.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선택보다, 아픔을 아는 사람이 더 깊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관계를 끊기보다 이어가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출처]
채널명: 책과삶 | https://www.youtube.com/watch?v=jE1XYpM44g8